이상훈 박사의 넥스트 처치 (5)
전략적 변화로 겨울을 대비하라
코로나바이러스가 활성화 되기 시작하자 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초창기 읽었던 글 중에 ‘빙하기’(Ice Age)를 준비하라는 짧은 아티클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만 해도 저자의 전망이 너무 비관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가 옳았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몰아친 코로나19라는 폭설은 겨울을 알리는 전조에 불과했다. 삶의 방식과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대한 문화 변화는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따라서 교회는 긴 호흡을 가지고 민첩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습성을 버려야 한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면서 몸에 체득된 습관과 패턴을 가지고서는 겨울을 날 수 없다. 시대 변화를 보자. 모두가 인지하고 있듯이 코로나19는 기존의 모든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도 성공을 거둔 기업과 개인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를 앞서 나가는 안목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 적합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었다. 시대를 읽고 준비하는 기업과 조직은 한결같이 ‘비대면’(untact) 시대의 전략을 세우고 빠른 체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많은 대가와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기에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도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교회가 과거의 습성을 버린다는 무엇을 뜻할까. 일차적으로 이것은 과거로부터 학습된 성공과 성취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다. 오히려 길을 만드는 개척자의 메타포가 더 어울린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위험한 곳에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생소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전도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결연한 의지와 헌신 없이 사역은 불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도 전략적 접근은 필요하다. 몇 가지 실천 사항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 위기에 대한 분석과 적응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했을 때, 적지 않은 교회들이 대응할 자원과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대책 없이 이 때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긴 겨울을 대비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규모가 작기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지금은 모빌리티(mobility)가 중요한 시대다. 이동성은 곧 운동성과 연결된다. 큰 조직은 더 많은 에너지와 정교함을 요구하기에 변화가 어렵다.
방향을 정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한다면 규모가 작을수록 더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문제는 사이즈가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이다. 공부하라. 시대를 분석하고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사역은 리더의 기본 요소다.
두 번째는 영적 능력을 키우고 일상의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교회의 건강성은 영적 상태와 직결된다. 언택트 시대에는 과거와 같이 함께 교회에 모여 집단적인 교육과 훈련을 하기가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생활 신앙을 회복할 때다. 주일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주 7일 모든 곳에서 제자의 삶을 살아내는 성도가 세워져야 한다.
교회는 성도들이 일상의 삶에서 영적 연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역을 디자인하고, 성도들은 온 오프(on/off) 모임으로 연결되어 지속적인 지원을 받는 구조가 형성 된다면 훨씬 더 강력한 영적 공동체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선교적 사명의 실천이다.
창의적 사역은 위기에서 발생한다. 정답사회에서는 창의력을 기를 수 없다. 이 시기는 정답이 없는 시대다. 모범 답안도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사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려 하는 교회일수록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식을 사용한다. ‘언택트’가 사랑과 섬김을 가로막지 못한다. 세상이 고립되고 외로울수록 그들을 향한 진정성은 더 강한 향기가 되어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는 고백한다. 이 위기조차도 하나님의 손 아래 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나아가자. 긴 겨울을 맞이하면서 움츠러진 어깨를 활짝 펴고 영적 무장과 사명 회복을 통해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꿈을 가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