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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티클 | MC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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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티클 | MC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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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상훈 목사의 넥스트쳐치 (5)</title>
		<link>https://mca.network/next-church-by-rev-sanghoon-lee-5/</link>
		
		<dc:creator><![CDATA[mcanetwork]]></dc:creator>
		<pubDate>Tue, 29 Dec 2020 23:03:32 +0000</pubDate>
				<category><![CDATA[아티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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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교회가 과거의 습성을 버린다는 무엇을 뜻할까. 일차적으로 이것은 과거로부터 학습된 성공과 성취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et_pb_section et_pb_section_0 et_section_regul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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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et_pb_text_inner"><h2>이상훈 박사의 넥스트 처치 (5)</h2>
<h3>전략적 변화로 겨울을 대비하라</h3>
<p>코로나바이러스가 활성화 되기 시작하자 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초창기 읽었던 글 중에 ‘빙하기’(Ice Age)를 준비하라는 짧은 아티클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만 해도 저자의 전망이 너무 비관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p>
<p>그러나 그가 옳았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몰아친 코로나19라는 폭설은 겨울을 알리는 전조에 불과했다. 삶의 방식과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대한 문화 변화는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따라서 교회는 긴 호흡을 가지고 민첩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p>
<p>무엇보다 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습성을 버려야 한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면서 몸에 체득된 습관과 패턴을 가지고서는 겨울을 날 수 없다. 시대 변화를 보자. 모두가 인지하고 있듯이 코로나19는 기존의 모든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도 성공을 거둔 기업과 개인이 있다.</p>
<p>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를 앞서 나가는 안목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 적합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었다. 시대를 읽고 준비하는 기업과 조직은 한결같이 ‘비대면’(untact) 시대의 전략을 세우고 빠른 체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많은 대가와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기에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도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p>
<p>교회가 과거의 습성을 버린다는 무엇을 뜻할까. 일차적으로 이것은 과거로부터 학습된 성공과 성취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다. 오히려 길을 만드는 개척자의 메타포가 더 어울린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위험한 곳에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생소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전도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결연한 의지와 헌신 없이 사역은 불가능하다.<br />물론 여기에도 전략적 접근은 필요하다. 몇 가지 실천 사항을 생각해 보자.</p>
<h4>첫 번째는 위기에 대한 분석과 적응이다.</h4>
<p>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했을 때, 적지 않은 교회들이 대응할 자원과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대책 없이 이 때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긴 겨울을 대비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규모가 작기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p>
<p>지금은 모빌리티(mobility)가 중요한 시대다. 이동성은 곧 운동성과 연결된다. 큰 조직은 더 많은 에너지와 정교함을 요구하기에 변화가 어렵다.</p>
<p>방향을 정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한다면 규모가 작을수록 더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문제는 사이즈가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이다. 공부하라. 시대를 분석하고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사역은 리더의 기본 요소다.</p>
<h4>두 번째는 영적 능력을 키우고 일상의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h4>
<p>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교회의 건강성은 영적 상태와 직결된다. 언택트 시대에는 과거와 같이 함께 교회에 모여 집단적인 교육과 훈련을 하기가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생활 신앙을 회복할 때다. 주일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주 7일 모든 곳에서 제자의 삶을 살아내는 성도가 세워져야 한다.</p>
<p>교회는 성도들이 일상의 삶에서 영적 연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역을 디자인하고, 성도들은 온 오프(on/off) 모임으로 연결되어 지속적인 지원을 받는 구조가 형성 된다면 훨씬 더 강력한 영적 공동체가 될 것이다.</p>
<h4>세 번째는 선교적 사명의 실천이다.</h4>
<p>창의적 사역은 위기에서 발생한다. 정답사회에서는 창의력을 기를 수 없다. 이 시기는 정답이 없는 시대다. 모범 답안도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사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려 하는 교회일수록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식을 사용한다. ‘언택트’가 사랑과 섬김을 가로막지 못한다. 세상이 고립되고 외로울수록 그들을 향한 진정성은 더 강한 향기가 되어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p>
<p>우리는 고백한다. 이 위기조차도 하나님의 손 아래 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나아가자. 긴 겨울을 맞이하면서 움츠러진 어깨를 활짝 펴고 영적 무장과 사명 회복을 통해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꿈을 가지고 말이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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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생명을 살리는 역동적 공동체로 거듭나라</title>
		<link>https://mca.network/post-corona-church/</link>
		
		<dc:creator><![CDATA[mcanetwork]]></dc:creator>
		<pubDate>Tue, 29 Dec 2020 22:08:37 +0000</pubDate>
				<category><![CDATA[아티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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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코로나 19가 교회에 던진 과제는 너무나 크다. 솔직히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대면하고 풀어가는 일 자체도 버겁다. 그러나 지도자는 미래를 보아야 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et_pb_section et_pb_section_1 et_section_regul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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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et_pb_text_inner"><h4>코로나19 이후 교회의 길:</h4>
<h2>생명을 살리는 역동적 공동체로 거듭나라</h2>
<h5>이상훈 교수</h5>
<p>&nbsp;</p>
<p>코로나 19의 여파가 거세다. 재앙을 겪어보지 못했던 대다수의 현대인에게 코로나 사태는 인류 문명의 실상과 한계를 체감하는 실증적 사건이 되었다. 무엇보다 팬데믹 현상이 수개월째 지속되면서, 이제 역사는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상황으로 나뉘어질 것이다. 물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그림은 매우 불분명하다. 단지 바이러스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됐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가상/증강현실(AR/VR), 로봇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진화는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사실상,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뉴노멀(new normal)은 재난이나 재앙이 아니다. 새로운 과학 기술의 발전은 머지 않은 시간에 재택근무, 화상회의, 온라인 교육,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등과 같은 비대면(untact) 문화를 낳을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충격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미래가 우리 시대에 전격적으로 실행된 것 뿐이다.</p>
<p>이러한 급격한 상황 변화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 교회를 위기와 도전 앞에 서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과학과 기술 혁신이 가져올 사회 변화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하기도 전에 들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습은 교회를 생존 게임으로 밀어 넣었다. 말 그대로 전열을 정비할 틈도 없이 많은 교회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했다. 그래도 초기에는 희망이 있었다. 급하게 온라인 예배를 도입하고, 한 주 한 주를 힘겹게 버티면서도 곧 원래 상태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감 같은 것 말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더 뜨겁고 열정적이며 감격적인 예배를 드릴 거라는 전망도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과 함께…</p>
<p>그러나 막상 다시 예배당에 모이게 된 지금 교회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렵다. 비단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와 제한성 때문 만은 아니다. 오히려 몇 개월의 공백 기간이 가져다준 질문과 문제 제기가 크다. 코로나 19는 교회가 그동안 의심 없이 믿고 실행해 왔던 여러 사역들, 특히 목회 성공의 척도가 되었던 성도 수와 교회 건물, 프로그램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많은 교회가 더 많은 사람을 한 곳에 모이게 하기 위해 큰 건물을 짓고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는가. 한때 이러한 시도가 교회 성장의 공식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문제는 성장이 멈추고 성도 수와 재정이 줄어들고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일들이 명백해진 시점에도 이러한 관성은 멈출 질 몰랐다는 점이다. 아니, 스스로 제어할 힘을 상실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만 같다.</p>
<p>코로나 19는 교회를 멈춰 세웠다. 스스로를 뒤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재고할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가 이제까지 그토록 외쳤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며, 교회의 사명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보냄 받은 성도의 수와 삶의 질이라는 것을 회복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위기이며 동시에 기회임이 분명하다. 만약, 이 시점에도 교회의 가치와 방향이 하나님 나라와 선교에 맞춰지지 않는다면 촛대는 옮겨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은 생존을 고민할 때지만,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을 걸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 위해 구별된 거룩한 백성의 모임이기에 본질과 사명에 충실한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이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p>
<p>&nbsp;</p>
<h4><strong>본질적</strong> <strong>회심이</strong> <strong>필요하다</strong></h4>
<p>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론적 목적과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코로나 19 이전의 교회는 집합적이고 모이는 사역이 중점을 뒀다. 당연히 교회는 건물과 성직자,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교회들은 남들보다 더 좋은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클수록 성도들은 더 수동적이며 소비적인 신앙인이 되어 간다. 종교적 서비스를 받기 위해 오는 성도들이 많아진 것이다. 또한 모이는 교회를 강조할수록 일상의 영성과 멀어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추상적(abstract)이며 이원론적인(dualistic) 영성의 강화가 일상과 관련 없는 왜곡된 신앙관을 형성시켰다. 그 결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됐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의 아픔과 문제를 외면하고 자신들만의 아성을 구축하는 집단처럼 비춰지는 아픈 결과가 나타났다.</p>
<p>코로나 사태를 통과하면서도 종교를 향한 세상의 평가는 더욱 냉정해졌다.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진행한 한 좌담회에서는 ‘코로나 사태라는 중차대한 시국에 종교가 한 역할이 없다.… 코로나는 종교의 위상 격하의 계기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오갔다.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위해 실천했던 섬김의 노력들은 모두 사라지고 부정적이며 단편적인 평가가 불편하고 아쉬웠지만, 그것이 현재 종교와 교회를 향한 세상의 평가라면 이 또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세상의 기관과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제 살을 깎듯, 교회 역시 생존하기 위해 선택했던 여러 행동이 사람들의 눈에는 이기적이고 비본질적으로 비칠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p>
<p>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개 교회의 위기를 넘어 교회 공동체 전체에 닥쳐온 위기 임을 인식해야 한다. 교회의 미래는 한두 교회의 모습으로 바뀌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 전체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회가 회심해야 한다. 핵심가치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기초와 기본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 즉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구별된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다시 세상을 위해 보냄 받은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본질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코로나 이후 교회의 미래는 암담할 수 밖에 없다.</p>
<p>&nbsp;</p>
<h4><strong>살아있는</strong> <strong>생명체가</strong> <strong>되라</strong></h4>
<p>코로나 19는 모이는 교회를 한순간에 흩어지는 교회가 되도록 만들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이었기에 교회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중 예배 대신 스크린 앞에서 혼자 혹은 가족 단위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하는 성도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오랜만에 드려보는 가족 예배를 통해 평상시 느끼지 못했던 예배의 회복과 가족의 중요성을 체험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낯설고 고독한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그중에는 다른 교회 예배를 서핑하거나 아예 예배를 드리지 않는 성도들도 발생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회중 예배에서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면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지 않은 성도들이 발생했고, 이들 가운데는 오프라인 예배가 시작되어도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교회 주변부에 머물며 결국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이 사태가 더 가중될 것이라는 예측이 심장을 떨리게 한다.</p>
<p>또 다른 고민은 다음 세대와 관련된 문제다. 얼마 전 국민일보가 ‘주일학교사역자연구소’ 조사에 근거해 ‘코로나 19 기간 동안 주일학교 사역은 사실상 중단됐다’는 보도를 했는데 이 또한 탈출구 마련이 쉽지 않은 주제다. 최근 전략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시나리오 분석 기법을 활용해보자. 최악의 경우, 신약 개발이 지연되고 교회 모임이 지금처럼 여러 제한 요소를 안게 된다면, 또는 변종 혹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해 작금의 현상이 되풀이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 기존 성도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다음 세대에 대한 대안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p>
<p>이런 현실은 교회 중심적 사역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다. 교회의 건강성을 측정할 때, 이제까지 우리는 성도들의 일상의 삶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간과해 왔다. 주 6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부족했다. 성경은 무엇을 증거하는가. 사도행전 8장 4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핍박이 왔을 때 흩어진 성도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신앙의 진면목은 함께 있을 때도 중요하지만, 흩어졌을 때 드러난다. 성령에 충만한 성도들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증인 됨의 삶을 산다. 그것은 전혀 특별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p>
<p>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성도들의 영적 생활을 더욱 면밀히 들여다보고 일상의 삶에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역의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의 영성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역동성이 발생할 수 있다면 성도들은 자기 삶의 현장을 선교지로 여기며 그곳에서 제자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가정을 선교지로 여기면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키우기 위해 가정 예배와 신앙 교육을 충실히 할 것이고, 주변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 기회를 찾고 나눔을 실천할 것이다.</p>
<p>이렇듯 작은 단위가 살아야 한다. 교회의 구조적 측면도 그렇다. 최근 북미지역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흐름 중의 하나는 많은 교회들이 더 이상 거대한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큰 교회 건물을 만들어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을 한 장소에 모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큰 예배당 대신 소규모의 예배당을 만들고, 교회를 여러 곳으로 나누어 성도를 분산화(decentralization) 시킨다. 이는 크고 화려한 것 대신 작고 진정한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고, 지역과 이웃에 기반한 친밀한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우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 하나의 예가 멀티사이트(multisite) 교회 현상인데, 지금 북미 지역에는 5,000개 이상의 멀티사이트 교회가 있다. 이와 함께 교회의 기본 단위를 선교적 공동체(missional community)나 가정 교회(house church)로 삼고, 성도들이 중심이 된 소그룹 사역에 역량을 기울이는 교회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휠씬 더 강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일 뿐 아니라,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더 역동적으로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p>
<p>그러므로 새로운 구조는 전통적인 구조와 정 반대 모습을 띤다. 전통적 구조가 위로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탑-다운 형식이고 소그룹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존재했다면(그림 1), 새로운 구조는 소그룹 자체를 자생적으로 형성 및 재생산하고, 교회는 그러한 그룹들이 세상을 섬기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력과 재정, 프로그램을 서포트(support)한다(그림 2). 당연히 교회 구조는 단순해지고(simple), 사역은 유기적이며(organic), 내용은 선교적(missional)인 특징을 갖는다. </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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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et_pb_text_inner"><p><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wp-image-9628 alignnone size-full" src="https://mca.network/wp-content/uploads/2020/12/church-top-down-structure.png" alt="church top down structure" width="327" height="278" srcset="https://mca.network/wp-content/uploads/2020/12/church-top-down-structure.png 327w, https://mca.network/wp-content/uploads/2020/12/church-top-down-structure-300x255.png 300w" sizes="(max-width: 327px) 100vw, 327px" /></p>
<p>&lt;그림 1: Top-Down의 전통적 구조&gt;</p>
<p><img decoding="async" class="wp-image-9630 alignnone size-large" src="https://mca.network/wp-content/uploads/2020/12/organic-church-1024x522.png" alt="organic church" width="834" height="425" /></p>
<p>&lt;그림 2: 소그룹 중심의 유기적 구조&gt;</p>
<p>&nbsp;</p>
<p>이를 좀 더 확대해 본다면, 선교사로서의 개인을 세우고, 그 개인이 있는 가정이 교회가 되며, 가정과 가정이 만나 선교적 소그룹을 형성하고, 선교적 소그룹이 모여 허들(Huddle: 50~100명 사이의 중형 사이즈 주 중 모임)을 형성하고, 허들이 모여 캠퍼스 교회가 되고, 캠퍼스 교회가 모여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는 리더십이 분산될 뿐 아니라 많은 평신도 리더를 필요로 한다. 사역의 틀과 내용이 변하지 않고서는 이런 교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역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p>
<p>유기적이고 자생적이며 선교적인 리더와 소그룹이 존재하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다.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대량생산하던 근대주의적 사역은 이제 끝났다. 지금은 개별적이고 독특하며 특색 있는 맞춤형 사역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 누구도 틀에 박혀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틀 밖에서 자유를 누리되 자신의 가치와 재능이 존중되고 펼쳐질 수 있기를 원한다. 복음은 개인을 속박하지 않는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역동적 성도를 만들고, 이들이 모여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소그룹 기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p>
<p>&nbsp;</p>
<h4><strong>세상을</strong> <strong>위해</strong> <strong>움직이는</strong> <strong>교회가</strong> <strong>되라</strong></h4>
<p>필자는 최근 저서 &lt;리싱크 처치&gt;를 저술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반 서적을 읽었다. 교회가 시대에 적응하고 변화하기 위해 세상의 기업과 조직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서 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략과 전술 이면에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기본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것은 바로 ‘가치’와 ‘정신’이었다. ‘창업자 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비전’과 ‘사명’ 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사회와 세상의 유익을 위한다는 선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p>
<p>하물며 교회가 세상의 유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비극은 교회가 세상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평가다. 물론, 이러한 평가에 교회는 매우 억울할 수 있다. 많은 교회가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그랬다. 적어도 필자가 가까이 하고 있는 교회들은 이 기간에 세상을 섬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일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기독교 신문에서만 화자 되고, 세상 매체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쉽고 안타까웠다.</p>
<p>그런데 여기서 발견되는 중요한 내용이 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되 일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선교학에서 강조하는 가장 기본적인 101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으로부터 듣고 배우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보라. 하나님 역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방법을 포기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는 이곳에 오셔서 인간의 말과 문화를 배우시고, 우리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 교회는 들어야 한다. 듣지 않고 배우지 않는 교회는 과거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크리스텐돔(Christendom)의 환각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을 위해 존재하려면 세상으로부터 듣고 배워야 한다.</p>
<p>둘째는 세상의 아픔에 참여하는 일이다. 복음은 약한 자들을 향한 공감과 참여를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그는 죄인의 친구(마 11:19)가 되셨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세상은 각박해지고 아파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고통이 서막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더 큰 혼란과 아픔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경제의 문제, 소외의 문제, 정신의 문제, 각종 상처와 스트레스, 상실의 아픔에 노출된 사람들이 많다. 누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줄 것인가. 누가 그들을 돌봐주고 보듬어 줄 것인가. 그것이 바로 교회의 책임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 진정한 교회가 된다는 본회퍼의 말처럼 낮고 연약한 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p>
<p>세 번째는 세상의 필요를 채우는 교회다. 그것이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되는 교훈이다.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는 &lt;기독교의 발흥, The Rise of Christianity&gt;이라는 책에서 초대 교회가 어떻게 시대적 핍박과 저항을 뚫고 로마를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 실감 나게 묘사한다. 결국 그것은 세상을 죽음으로 물들인 역병 속에서도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죽음의 위협도 초월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 하는 순교적 영성은 의지적으로 죽기 위해 자신을 꺾는 모습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에 압도된 성도들이 그 사랑을 전하는 삶에서 발현되는 현상이다. 교회가 자신이 아닌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 그것은 그들과 함께할 뿐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채워주는 것을 동반한다.</p>
<p>뉴욕의 브루클린 성막교회(Brooklyn Tabernacle Church)가 좋은 예이다. 범죄와 폭력, 가난이 난무하던 뉴욕 할렘가에 비가 새고 천정이 내려앉을 정도로 열악한 건물에서 20명의 성도와 교회를 시작했던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는 성령을 의지해 모든 사람이 환영받는 교회를 만들었다. 의사, 변호사뿐 아니라 마약 중독자, 출소자, 홈레스 들이 함께 하는 교회, 그리고 그들의 영적,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을 통해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 중의 하나로 쓰임 받고 있다. 필자가 자주 언급하는 엘에이의 드림센터(Dream Center)도 마찬가지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교회로 유명한 이 교회는 코로나 19가 시작되어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위기에 처하자 모든 자원을 활용해 도움을 펼쳤다. 하루 종일 기부를 하기 위해 몰려든 차와 사람들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이며 그들을 작은 영웅으로 환대하고, 누구든 기부된 물품과 물자를 받아 갈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장면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해 생중계하고 작은 자원을 나누고 세상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인지를 전파했다. 하루에도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이 기부를 하고 도움을 받는 장이 열리자 그곳은 웃음과 감격, 눈물이 끊이지 않는 현장이 됐다. 누가 과연 이런 교회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누가 과연 이런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이렇게 대담하게 세상을 섬기고 사랑하는 활동을 하지 못할까. 이렇게 크고 힘 있는 교회들이 많은데… 왜 우리는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할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선 행하기를 그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p>
<p>네 번째는 복음으로 초청하는 일이다.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세상이 가장 목말라 하는 것은 돈과 물질이 아닌 생명이다. 생명을 전하기 위해 교회는 존재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회가 주눅 들었다. 성도들도 교회도 세상의 눈치를 본다. 교회 문을 열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통로를 다양화해야 한다. 이 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그것이 교회의 가장 큰 과제다. 분명한 점은 이 시대는 과거보다 훨씬 더 관계 중심적이며 공동체적 접근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을 감추는 익명성과 안전성을 추구하는 시대일수록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복음 전도는 불가능하다. 다시, 여기서 성도 개인의 선교적 정체성과 소그룹 공동체의 사역이 핵심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단지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믿음(believing)과 소속(belonging)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신뢰를 쌓고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를 키워내라. 그것이 힘이 될 것이다.</p>
<p>&nbsp;</p>
<h4><strong>Untact</strong><strong>에서</strong><strong> Ontact</strong><strong>로</strong><strong>, </strong><strong>다시</strong> <strong>Contact</strong><strong>로</strong> <strong>중심축을</strong> <strong>바꾸라</strong></h4>
<p>코로나 19가 가져다준 가장 강력한 충격과 교훈은 비대면, 비접촉 사회의 도래로 발생한 라이프 스타일이다. 인간이 서로 대면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 또 적응해 가고 있다. 기업들은 이미 언택트 비즈니스 전략을 세워 비대면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결국, 세상의 이러한 흐름은 언택트 시대를 안착시키고 홀로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 낼 것이다.</p>
<p>언택트와 함께 떠오르는 말이 온택트(ontact) 문화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외부와 연결해 주는 온라인 문화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회 역시 언택트에서 온택트로의 흐름에 빠르게 동참하고 있다. 유튜브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예배 실황을 중계하고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 성도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에 열심이다. 이러한 흐름은 작은 교회들에도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사회는 이미 자본과 노동, 기술 집약적인 TV 중심에서 1인 미디어 시대로 변해 가고 있다. 과거 미디어는 대형 교회가 아니고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교회의 크기를 떠나 차별화된 콘텐츠를 통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온라인과 미디어 사역은 코로나 19 이후 더욱 발전할 선교 영역이다. 무엇보다 교회 밖 사람들과 세대들에게 선교 콘텐츠를 제공하고 나누며 초청할 수 있기에 SNS와 온라인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는 미래 선교 동력의 핵심이 될 확률이 높다.</p>
<p>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역 원리가 있다. 그것은 ‘언택트’에서 ‘온택트’로, ‘온택트’에서 다시 ‘컨택트’로 옮겨 가는 사역의 흐름을 만드는 일이다. 온라인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온라인 교회를 생각하기는 쉽지만, 오프라인에서처럼 헌신도가 높은 성도를 만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이들을 복음에 접촉시키고, 다시 신앙 공동체로 포함되게 할 것인가는 계속 고민하고 풀어야 할 과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것이다. 새들백 교회의 경우 수천 개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어 전 세계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고 연결될 수 있지만, 그들의 목적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프라인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사역의 특성과 내용에 따라 이 원칙이 반드시 적용될 필요는 없다. 온라인 특성에 따라 유연하고 자율적이며 인 앤 아웃(in and out)이 자유로운 공동체 형성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p>
<p>이곳을 선교지로 여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24시간 연결되어 있고 머무는 장소에서 선교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이민자들인 기성세대의 기준으로 사역을 해서는 안 된다. 이 사역은 완전히 틀 밖에서(out of box) 상상하고 체험하고 시도되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자신만의 재능과 관심, 부르심을 놀이와 재미, 의미 등과 결합시켜 창조적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복음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제와 권면,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는 데 있다. 그 본질을 위해 더욱 과감하고 창조적인 시도가 필요하다.</p>
<p>&nbsp;</p>
<h4><strong>리더여</strong><strong>, </strong><strong>선교적</strong> <strong>크리에이터가</strong> <strong>되라</strong></h4>
<p>코로나 19가 교회에 던진 과제는 너무나 크다. 솔직히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대면하고 풀어가는 일 자체도 버겁다. 그러나 지도자는 미래를 보아야 한다. 당장의 문제를 넘어 내일을 보고 미래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예측하고, 시나리오를 만들며, 꿈을 꾸어야 한다. 시대에 짓눌린 지도자를 따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탁월한 영성가이면서, 미래의 예언자이고,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사역을 촉진시킬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대를 비관하지 말라.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믿고, 어떻게 그 사역에 동참할 것인가 분별력을 가지고, 새로운 영역에 자신을 던지는 용기와 결단을 갖는 것이다. 놀랍도록 창의적인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범주를 벗어난 방식으로 세상을 흔드신다. 그렇게 세상의 관성과 질서를 재편하고 계시다. 우리가 가장 절망스럽게 느끼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희망은 솟아나고 있다. 그것을 믿음으로 보고 참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선교적 크리에이터(creator)의 운명이고 가야 할 길이다.</p>
<p>&nbsp;</p>
<p><strong>글쓴이:</strong></p>
<p>이상훈 교수는 America Evangelical University(LA 미성대학교) 총장, Fuller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Missional Church Alliance(MiCA) 디렉터, 리폼처치, 리싱크처치 등의 저자이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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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이상훈 목사의 넥스트쳐치 (4)</title>
		<link>https://mca.network/next-church-by-rev-sanghoon-lee-4/</link>
		
		<dc:creator><![CDATA[mcanetwork]]></dc:creator>
		<pubDate>Sun, 01 Nov 2020 22:55:20 +0000</pubDate>
				<category><![CDATA[아티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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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미래 교회는 새로운 사고 전환을 요구한다. 급변하는 문명이 초래할 다양한 위기 상황 앞에 교회는 더 유연하고 선교적인 체질로 변화되어야 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et_pb_section et_pb_section_2 et_section_regul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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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et_pb_text_inner"><h2>이상훈 박사의 넥스트 처치 (4)</h2>
<h3>새로운 길은 움직일 때 열린다</h3>
<p>미래를 향한 항해는 언제나 불안하다. 더구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갈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움츠림이었다. 언제 이 사태가 끝날지, 정상화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교회는 마치 지뢰밭을 걷고 있는 양, 한 발 한 발 천천히 발을 떼는 양상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을 잘 보내야 한다. 현실에 묶이는 것이 아닌 사명에 초점을 맞추고 부르심을 위한 발걸음을 떼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길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공유해 본다.</p>
<h4>공동체의 아픔에 참여하라</h4>
<p>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세상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의 일차적 관심은 소외되고 약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어떤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복음의 능력이 지속되었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고통을 받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병에 걸리고, 직장을 잃고, 관계가 깨어지고, 고독과 두려움에 빠지고, 거동이 불편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이웃들이 많다. 교회가 그들의 아픔을 알고 함께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일차적 발걸음이다.</p>
<h4>이웃을 향한 나눔을 실천하라</h4>
<p>성육신적 사역은 낮아짐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는 행위로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셨다. 이웃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것을 채워주는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안에서(in the world), 세상과 함께(with the world), 세상을 위해(for the world) 존재해야 한다.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이웃의 필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는 사역에 참여했는지 보았다. 그리고 그런 교회를 통해 자부심을 느꼈다. 이 기간은 세상을 향해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세상을 위한 사랑의 섬김을 시작하라.</p>
<h4>성도들의 자원을 활용하라</h4>
<p>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역은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사역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선교적 교회의 기본 개념인 ‘보냄’(sending)을 실천하고 이를 지원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교회 밖에서 성도들은 교회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네트워크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전문적인 직업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접촉하고 교제할 기회도 많다. 그들이 가는 곳이 선교지이고 교회가 되게 하라.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는 주체가 되어 움직이고, 그러한 경험과 아이디어를 다시 교회로 가져와 더 정교하고 현실적인 사역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교회는 훨씬 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공동체가 될 것이다.</p>
<h4>가정과 소그룹 사역을 강화하라</h4>
<p>코로나19는 비대면, 비접촉을 상징하는 ‘언택트’(untact) 문화를 만들었다. 이는 한 공간에서 스킨십을 나누며 친밀한 모임을 추구했던 교회 모임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성인뿐 아니라 다음 세대가 직격탄을 받았고,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고 계승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해답은 가정이다. 결국 가정에서 예배가 살아나고 신앙이 이어져야만 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전체가 모일 수 없을 때 소규모 모임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 교회는 더 작고 유기적인 체질로 바뀌어야 한다. 최근에 교회의 분산화(decentralized church)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소그룹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p>
<h4>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사역을 활성화하라</h4>
<p>코로나19를 통해 교회는 온라인 사역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온라인은 교회 사이즈를 떠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시간과 공간, 거리의 장벽을 넘어 모임과 돌봄, 훈련과 양육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결(connection)이 목마른 시대에 온라인은 사람을 연결하고 접촉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 중 하나다.</p>
<p>홈페이지뿐 아니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유튜브 등을 활용하라.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라. 또한, 온라인 소그룹을 통해 성도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그 속에서 서로 격려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이끌라. 디지털 시대에 온라인 사역은 일시적 대안이 아니라 선교의 필수 영역임을 기억하고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p>
<p>미래 교회는 새로운 사고 전환을 요구한다. 급변하는 문명이 초래할 다양한 위기 상황 앞에 교회는 더 유연하고 선교적인 체질로 변화되어야 한다.</p>
<p>사명이 이끌어 가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교회, 움츠림이 아닌 위기를 기회로 여기며 움직일 수 있는 교회가 될 때 새로운 길은 열릴 것이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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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상훈 목사의 넥스트쳐치 (3)</title>
		<link>https://mca.network/next-church-by-rev-sanghoon-lee-3/</link>
		
		<dc:creator><![CDATA[mcanetwork]]></dc:creator>
		<pubDate>Fri, 30 Oct 2020 22:48:19 +0000</pubDate>
				<category><![CDATA[아티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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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시대를 직시해야 한다. 만약 리더로서 과거로 돌아갈 시기만 조율하고 있다면 이보다 큰 착각과 실수는 없을 것이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et_pb_section et_pb_section_3 et_section_regul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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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et_pb_text_inner"><h2>이상훈 박사의 넥스트 처치 (3)</h2>
<h3>지금이 변화를 위해 최적화된 시간</h3>
<p>세상이 멈춰 버린 듯한 느낌이다. 필자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코로나19 여파로 정상적인 생활과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도 커져만 간다. 언제 끝이 날지, 그 이후에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기에 모두가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지낸다.</p>
<p>교회가 받은 충격 또한 엄청나다. 회중 예배가 제한되고 이제까지 당연시 여겨 왔던 모든 모임과 사역이 중단되었다. 교회에 위기가 닥쳤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교회는 작은교회대로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다다랐다. 이 어려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할 뿐이다.</p>
<p>그러나 교회가 과거의 자리로 돌아가 이전과 동일한 사역을 한다 해도 그 전과 같은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미국의 경우 몇몇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끝나고 나면 장기적으로 성도의 1/3을 잃을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수치의 정확성을 떠나 성도의 수적 감소를 예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p>
<p>또 하나의 예측은 교회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할 때 사회적 변화는 그런 교회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적응성과 유연성, 혁신은 미래의 키워드다. 시대의 흐름이 교회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p>
<p>선교적 교회 운동이 일어나면서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교회 변혁을 외쳤다. 본질로 돌아가서 교회 본연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거의 오랜 관성을 깨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br />그러나 코로나19는 그런 교회를 뒤흔들어 바꾸고 있다. 불과 몇 주 만에 많은 교회가 이제까지 주저해 왔던 새로운 모험에 뛰어들었다. 교회 건물을 벗어난 주일 예배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교회들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p>
<p>가정 단위로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 가정예배 현장에는 찬양팀도, 성가대도 없다. 심지어 가운을 입고 예배를 집례하는 성직자도 없다. 줌(zoom)으로 모여 얼굴을 보고, 온라인으로 성찬을 하는 교회도 있다. 예전 같으면 신학적 논의와 담론으로 실현되기 어려울 일들이 순식간에 현실로 들어와 버렸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가?</p>
<p>시대를 직시해야 한다. 만약 리더로서 과거로 돌아갈 시기만 조율하고 있다면 이보다 큰 착각과 실수는 없을 것이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다. 변화를 추구하되 어떤 기반 위에서 어떻게 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과거처럼 트렌드와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p>
<p>이제는 본질적인 차원에서 교회가 왜 존재하고 무엇을 하는 공동체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참된 변화는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지금의 상황은 본질적 변화를 위해 최적화된 시간이다. 누구도 변화를 거부하지 않을 때, 진짜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을 위해 사역적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br />놀랍게도 우리는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본질적 사명에 헌신하는 교회들이 부각되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가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묻고 찾으며 그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 교회들이 많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영향력을 가진 교회들도 아니다. 동네에 있는 평범한 교회들이지만, 이웃을 되돌아보고 지역을 돌보면서 교회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p>
<p>앨런 허쉬는 그의 책 「The Forgotten Ways」(잊혀진 교회의 길)에서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가 진정한 차원의 목적과 사명을 잃어버린 데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는 본질상 하나님의 선교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 부르심을 입었기에 선교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이며 사명이라는 것이다.</p>
<p>변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지금보다 더 세련되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세속 문화에 융합되어 힙(hip)한 교회가 되자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우선순위가 되어 우리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실천해 나갈 때, 교회는 변화되고 갱신될 수 있다. 그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첫 관문이다.</p>
<p>영적 관점으로 본다면 지금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 분명하다. 삶의 기반이 흔들릴 때 사람은 존재론적 성찰을 한다.<br />나는 교회와 리더들이 이 시간을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맞이하기를 바란다. 생존을 넘어 다른 교회와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회가 존재해야 할 목적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원점에서부터 재고하여, 위기의 시간에 교회 공동체가 있음으로 세상이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p>
<p>그로 인해 교회의 목적이 바뀌고 체질이 새롭게 형성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란다. 바로 지금이 위기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최적화된 기회임을 기억하자.</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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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상훈 목사의 넥스트쳐치 (2)</title>
		<link>https://mca.network/next-church-by-rev-sanghoon-lee-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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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9 Oct 2020 22:42:39 +0000</pubDate>
				<category><![CDATA[아티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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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20년 목회 지형도는 어떻게 변할까? 교회 전문가 톰 레이너(Thom S. Rainer)는 2020년 미국교회의 트렌드를 예상하며 7가지 항목을 제시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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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et_pb_text_inner"><h2>이상훈 박사의 넥스트 처치 (2)</h2>
<h3>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라</h3>
<p>2020년 목회 지형도는 어떻게 변할까? 교회 전문가 톰 레이너(Thom S. Rainer)는 2020년 미국교회의 트렌드를 예상하며 7가지 항목을 제시했다:</p>
<p>(1)예배 규모가 작아질 것이다. (2)주일 오전 시간 외에 드려지는 예배가 증가할 것이다. (3)교회 시설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4)출석이 더 강조될 것이다. (5)전도의 중요성과 우선성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6)풀타임 임금을 받는 목회자와 직원이 적어질 것이다. (7)지역교회는 교단을 넘어 다양한 단체와 연결될 것이다.</p>
<p>먼저, 예배 규모가 작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단지 줄어드는 성도 수와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과거 베이비부머 시대에는 크고 집단적인 가치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작은 규모와 친밀한 관계, 영적인 경험을 선호한다. 오늘날 미국의 젊은 교회들이 전형적인 교회 건물 대신 창고나 사무실, 카페나 가정집 등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p>
<p>예배 시간의 다양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 일요일 오전 10시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헌신적인 성도들조차 일요일에도 직장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로 인해 다양한 장소와 시간대에 예배를 제공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p>
<p>최근에는 주일과 똑같은 예배를 주중에 드리는 교회도 생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예배 시설에도 영향을 미쳐 큰 건물 대신, 멀티사이트 교회나 캠퍼스 교회가 보편화되고 온라인 교회가 확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p>
<p>출석과 전도에 대한 강조는 성령의 능력과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진 교회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사실과 맞물려 이해될 수 있다. 한때 교회는 사회적 선한 행위를 복음 전도와 동일시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식자 교회의 생명력 또한 약해졌다.<br />공격적인 전도나 이벤트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대가 종식되면서 복음은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복음이 복음 되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할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이 요구된다.</p>
<p>오늘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은 한결같이 복음 전도의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모든 성도가 주체가 되어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든다. 세상 한복판에서 이웃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복음을 전하는 진지한 시도와 노력이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 모든 역량을 기울인다. 소비적 종교인을 넘어 선교적 그리스도인을 만들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p>
<p>풀타임 사역자가 줄어들고, 전체적으로 교인과 헌금이 줄면서 이중직을 갖는 사역자가 많아지는 것은 필연적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의도적으로 이중직을 선호하는 사역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현장을 선교지로 여기며 복음을 전하고 신앙 공동체를 이끌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p>
<p>일터 사역, 직업선교, 비즈니스 선교와 같은 사역들이 활발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교단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많은 교회가 독립교회나 초교파 교회를 선호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확장성을 위해서는 다양한 단체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필요한 자원을 조달받는다.</p>
<p>물론 이러한 트렌드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예단하는 온전한 지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항은 이미 한국 교회에서도 감지되고 있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br />한국의 젊은 세대들 역시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인들의 삶의 자리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최정점에 놓여 있다. 목회자들에게 사역지 부족 현상과 이중직 또한 현실화 된지 오래고 그 속에서 교단이 끼치는 영향력과 역할은 점점 더 미미해져 가고 있다.</p>
<p>과거와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문제에 함몰되지 않고 새로운 돌파를 이뤄 낼 수 있을 것인가! 핵심은 이것이다. 부흥과 갱신은 언제나 절망과 갈등, 심각한 침체 속에서 발생했다.</p>
<p>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더불어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태도다. 관습과 습관에 갇혀 있던 사고의 틀을 벗어나 자유케 하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도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다.</p>
<p>그러므로 물어야 한다. 나는 오늘 시대를 읽는 냉철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가!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도전을 꿈꾸고 있는가! 과거를 맹종하고 답습하는 사역이 아닌 새롭고 창의적인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을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할 땀과 눈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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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상훈 목사의 넥스트쳐치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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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mcanetwork]]></dc:creator>
		<pubDate>Tue, 29 Sep 2020 22:38:32 +0000</pubDate>
				<category><![CDATA[아티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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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목회 지형이 흔들린다. 이제는 그동안 목회를 떠받쳐 왔던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누구나 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목회,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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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et_pb_text_inner"><h2>이상훈 박사의 넥스트 처치</h2>
<h3>목회 지형이 흔들린다</h3>
<p>20세기 말 세상은 온통 Y2K라 불리는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1900년대에서 2000년대로 바뀌게 되면, 컴퓨터가 날짜를 인식하는 것에 혼돈이 생겨 날아가는 비행기가 떨어지고 방사능이 누출되며, 금융망에 혼돈이 생기고, 잘못하면 핵미사일까지 발사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br />물론 극에 달했던 Y2K의 공포는 2000년 1월 1일 새 해가 시작되자마자 한 날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br />그러나 교회의 공포는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급성장을 이루었던 한국교회는 당시 정체기를 맞이했고, 이후 여러 곳에서 부식과 쇠퇴의 신호를 나타내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교회는 그러한 위기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90년대에 해왔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p>
<p>대형교회가 개최하는 세미나와 콘퍼런스에는 구름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많은 교회들이 새 건물을 짓고 있었고, 그 이면에는 빚을 내서라도 크고 웅장한 건물을 지으면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 또한 깔려 있었다.</p>
<p>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때나 오늘이나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렵다. 현상유지 조차 쉽지 않은 것이 오늘날 목회 현실이다.</p>
<p>필자가 미국에 온 것이 바로 2000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교회를 배우고 그 배움을 고국 교회에 접목해 앞서가는 목회를 하겠다는 순진한(?) 마음이 앞서 있었다. 물론 석박사 과정을 하는 8년 동안 양육비를 벌며 학위 과정을 쫓아가느라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대신 두 한인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성장의 기쁨과 깨어짐의 아픔을 느끼며 목회 현장의 냉정한 현실을 배울 수 있었다.</p>
<p>8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본 미국의 주류 교회들은 이미 쇠퇴와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고, 한국교회 역시 빠른 속도로 미국의 전철을 따르고 있었다. 원인은 건물의 문제가 아니었다. 프로그램의 문제도 아니었다. 시대가 변했고 문화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급속한 기술의 발전 속에 세속주의와 다원주의, 과학주의가 부상하고, 문화적으로는 포스트모던적 사고와 사상이 지배하면서 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p>
<p>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전광속화처럼 빠른 변화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자 시대를 예측하거나 대비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유발 하라리는 이 같은 맥락에서 “예측을 할 수 없으니 미래에 추구할 목표나 가치를 결정할 수도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이런 일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말이다.</p>
<p>종교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달라지는 것 또한 필연적 결과였다. 과거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삶의 안정과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이제는 엔터테인먼트와 가상 공간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또 교회들이 과거의 경험과 관행에 머무르며 그동안 쌓아온 부와 권력을 탐닉하는 동안 교회 밖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더 싸늘해졌다. 젊은 사람일수록 권위적이고 제도적인 기성 종교를 불신하고, 무관심은 커져만 갔다. 세상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며 자기 자신에 함몰되어 있는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란 기대는 불가능하다.</p>
<p>그래서인지 이제는 교회의 위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작고 연약한 교회 뿐 아니라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도 같은 고민을 한다. 솔직히, 수 천명의 신도를 가진 메가처치들도 돌파구를 찾기에 목이 마르다.</p>
<p>목회 지형이 흔들린다. 이제는 그동안 목회를 떠받쳐 왔던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누구나 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목회,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적인 목회가 필요하다. 과연 우리는 그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 새롭고 창의적인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인가.</p>
<p>이 글은 그러한 고민을 함께 하기 위해 쓰여졌다. 어떻게 생존을 넘어 교회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사이즈와 규모의 차원을 넘어 성경적이고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시고 성령이 이끌어가시는 참된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p>
<p>물론 그 답을 찾는 길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는 바로 그러한 지형에서 발생했다. 적대적이며 불안한 상황 속에서 성령의 역사는 발생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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